
한국도 북한도 아닌 땅에서 조선어가 들리는 도시, 중국 연변. 조선족의 역사와 정체성이 공존하는 이곳은 남한·북한·중국 문화가 뒤섞인 유일한 공간입니다. 33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곳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연길에서 만난 조선족의 역사와 정체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 도시 연길은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낯선 친근함을 선사합니다.
엔젤리너스 커피 대신 '엔젤리스 커피', 롯데리아 대신 '럭키리아'라는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짝퉁이 아니라, 사드 배치 이후 한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 프랜차이즈들이 철수한 자리에 남겨진 흔적입니다. 한국 브랜드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공항의 풍경은 이 도시가 걸어온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연길 시내로 들어서면 모든 간판에 중국어와 함께 조선어가 병기되어 있습니다.
스타벅스조차 한국어로 표기해 주는 이 지역만의 특별한 정책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라는 제도적 틀이 아직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길 백화 상점 안에는 CGV와 파리바게뜨도 입점해 있어,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조선족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반도를 강타한 기근과 일본의 식민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인들이 국경이 느슨했던 만주 지역, 즉 연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후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공식 설립하며, 이들에게 언젠가 한반도로 돌아갈 조선인이 아닌 중국 국적의 인민이라는 정체성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군대, 선전을 통해 '우리는 중국 국민인 조선족이다'라는 인식이 세대를 거쳐 내면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변 어디를 가도 조선어 간판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연변 TV(YBTV)에서는 우리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표준어로 뉴스가 방송됩니다. 조선족의 절반이 김·이·박 같은 성씨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뿌리 깊은 연원을 증명합니다. 한국 음식점에서 일하면 한 달 평균 60만 원을 받는 경제적 현실 속에서도, 수십만 명이 한국으로 건너가 일하고 돌아오는 패턴은 양국의 연결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도시는 겉으로는 중국이지만, 그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조선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용정 시장과 거리 음식으로 읽는 연변의 일상
연길에서 택시로 이동할 수 있는 용정시는 조선족 인구 비율이 약 70%에 달하는, 더욱 진한 조선족 문화권입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33년 전 한 방문자가 삼겹살을 먹으며 왠지 맘이 짠해져왔다고 회상할 만큼, 고향의 맛과 정서를 간직한 공간이었습니다. 된장과 상추까지 그대로였다는 기억은 단순한 식문화의 공유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생활 방식의 연속성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지금의 용정은 조금 다릅니다.
시청 주변 거리는 한산하고,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드뭅니다. 도로는 군데군데 파여 있고, 상가들은 문을 닫은 채 방치된 곳이 많습니다. 연길에 비해 발전이 더딘 이 도시는, 도시화와 고령화라는 보편적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일자리를 찾아 연길이나 한국으로 빠져나가고, 남은 어르신들이 작은 노점과 상점을 지키는 풍경은 한국의 농촌 지역과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연길의 서시장과 동시장, 그리고 용정의 재래시장을 둘러보면 음식 문화에서도 남한·북한·중국의 세 가지 문화가 혼재하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순대, 냉면, 꺼바로우(탕수육의 일종), 양꼬치가 한 골목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특히 연변식 냉면에 꺼바로우를 찍어 먹는 조합은 연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식문화입니다. 냉면 국물에 수박이 들어가고, 면의 식감이 밀크티 펄처럼 말랑말랑한 것도 서울 냉면과는 다른 개성입니다.
순대는 용정이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간이 세고 다소 뻑뻑한 식감은 서울식과 차이가 납니다. 반면 양꼬치는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풍미가 깊고 고기의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길거리에서 꽃이 하나에 800원이라는 가격으로 구워 파는 양꼬치는, 중국 본토에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연변만의 맛입니다. 호텔 1박 25,000원, 연변 맥주 한 병 2,400원이라는 물가는 한국 여행자에게 매우 합리적인 여행지로서 연변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조선어 학과와 연변 대학, 그리고 정체성의 미래

연변 대학교는 조선족 문화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보존하는 핵심 기관입니다.
학부생만 2,000명, 대학원생과 외국인 유학생을 합산하면 3만 명에 가까운 규모를 자랑하는 이 대학에는 '조선어 학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북한어 학과나 남한 관련 학과라는 명칭 대신 조선어를 통칭하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은, 이 공간이 남북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언어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은 교수, 통역사, 번역가로 활동하며 조선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비는 연 5,000위안, 한국 돈으로 약 100만 원에 불과합니다. 연변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전남대 등 한국의 여러 대학과 공식적인 교류 협력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대학 내 박물관에는 이를 증명하는 명패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연결고리는 조선족 사회와 한국 사회가 단순한 이민자-본국 관계를 넘어, 학문적·문화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연변 대학 맞은편 대학성 상가의 풍경은 또 다른 현실을 드러냅니다. 70개 이상의 상가 중 거의 대부분이 한국어 간판을 달고 있으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중국 MZ 세대들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연변을 찾고 있습니다. 메일롱이라는 연변 본사의 유통 회사가 운영하는 편의점에는 바나나맛 우유, 카스 맥주, 신라면, 설레임 아이스크림 등 한국 상품이 가득하며, 일부 제품은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상가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 중 조선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는 드뭅니다. 윗세대에 비해 한국말 사용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는, 조선어가 연변 사회에서 서서히 주변화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국 문화 콘텐츠는 소비되지만, 그것을 연결하는 언어로서의 조선어는 사라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정체성이 희미해진 조선족의 현실은, 국밥집 주인 김씨 아저씨가 자신을 '한족'이라고 밝히는 순간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33년 전 연변을 방문했던 이가 맛보았던 된장과 상추의 기억, 그 짠한 감정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달라진 것은 프랜차이즈 간판과 물가만이 아닙니다. 조선어를 잃어가는 세대, 자신을 한족으로 정의하는 후손들, 그러나 여전히 김·이·박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들. 연변은 지금도 조선족의 정체성과 중국인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 한국어가 통하는 유일한 중국 도시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oBGuloMJWmo